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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연재 - '특허 도용 합법화' 러시아, 그 검은 속내

등록일 : 2022.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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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여 특허로 말하라]
러, 한·미·EU 등 '비우호국' 지정해
특허 도용 손배 책임 폐지 논란


참여연대, 전쟁없는세상 등 392개 시민사회단체가 2월 28일 서울 중구 주한 러시아대사관 앞에서 우크라이나 침공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은 칼럼과 직접적 연관이 없음. ⓒ홍수형 기자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규탄하는 미국과 유럽 중심의 대(對)러시아 제재가 전 세계로 확산 중이다. 그런데 지난 10일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이러한 제재에 대한 대응의 하나로 '비우호적 국가'에 대한 모든 특허의 무단 사용을 허용하는 법령을 발표했다. 법령의 요지는 비우호국의 기업이 소유한 특허기술을 러시아 기업들이 허락 없이 사용하더라도 보상금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해외기업 소유의 기술을 무단으로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한국, 미국, 유럽연합(EU), 영국, 호주, 일본 등 48개국에 해당하는 조처다.

그동안 세계 각국은 특허 제도를 통해서 연구개발에 대한 성과 보상과 기술 공개를 통한 기술진보의 균형을 맞추어 왔다. 인류의 과학발전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지향한다는 전 세계적 공감대를 갖고 협력해 글로벌 특허 생태계를 구축해왔다. 상당한 성과도 있었다. 현재 한국, 미국, 유럽연합, 영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을 포함한 전 세계 155개국은 특허협력조약(PCT: Patent Cooperation Treaty)의 체약국이다. 다수의 국가가 '공업소유권의 보호를 위한 파리협약'에 가입하고 있다. 각국은 기본적으로 특허 기술의 소유자가 자국 기업인지 외국 기업인지를 떠나 기술개발에 소요되는 시간과 노력을 존중하고 보상할 것이라는 상호신뢰를 기반으로 특허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과학기술이 국경 없이 발전하는 데 협력·기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에서 특허를 받은 비우호국 기업들 역시 정해진 특허 절차에 따라 등록한 권리가 정당하게 인정받을 것을 기대하고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했을 것이다. 러시아 기업들이 법령의 보호 아래 비우호국의 특허 발명을 무단 사용한다면, 투입된 자원은 무용해질 뿐 아니라, 우수한 기술을 공중에 공개한 대가로 인정돼야 하는 독점 배타권이 사라진 셈이 돼 비우호국 기업들의 신뢰가 무너질 것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러시아는 강대국에 속하며 기술 집약적 특허 발명을 실시할 수 있는 충분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기술 도용이 합법화된다면, 특허로 보호받았어야 할 타 기업의 기술을 마치 원래 자국의 기술자산이었던 것처럼 강탈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말이다. 지식재산은 무형이다. 유명한 '콜럼버스의 달걀' 일화에서 알 수 있듯, 기술개발의 과정은 지난하지만 일단 개발되면 쉽게 재현할 수 있으며, 습득 후에는 기술을 몰랐던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한번 도용해 습득한 기술에 대해서는 추후 전쟁과 러시아 제재가 종료되더라도 원래 러시아의 것이었던 양 행세할 수 있고, 도용 범위를 특정하기 어려우며, 그에 대한 적절한 보상 역시 산정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나중에는 비우호국 기업들이 막대한 자산을 투자해 개발한 제품이 불법적으로 도용된 기술로 만들어진 러시아 제품과 경쟁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손해가 막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전부터 러시아는 경제 구조상 행정적으로 통제되는 부분이 많아 지식재산권 침해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지 않고, 사법 판단의 공정성에 의문이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평소 기술 도용 문제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았던 러시아의 지식재산권 체계를 고려한다면, 이번 러시아의 조치가 그리 놀랍지 않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긴급히 필요한 기술이 아닌데도 별다른 조건 없이 기술 도용을 허용하겠다는 것은, 기술 전쟁의 시대에 전 세계 모든 기술을 무단으로 사용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결국, 세계의 발명자와 기업을 대상으로 선전포고를 한 것과 다름없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전쟁 상황이라지만, 이를 핑계 삼아서 분명히 주인이 있는 세계 유수의 기술을 정당하지 않은 방식으로 자국 기술화하려는 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며, 전 세계의 러시아에 대한 배척을 가속할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김지우 다선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기업기술가치평가사 ⓒ홍수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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